작성일 : 16-01-02 09:05
어떻게 상대의 수를 읽을 것인가?
 글쓴이 : 이동윤
조회 : 4,135  
마라톤 대회에서 선두를 다투는 두 주자가 취할 수 있는 대응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말 그대로 처음부터 선투에 나서서 계속 끝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다른 수는 30km까지 선두를 바짝 뒤따라가다가 갑자기 치고 나가 끝까지 골인하는 것이다. 나는 사이클을 타다가 함부로 달리는 자전거를 보면 2m 앞으로 추월하여 앞으로 간다. 가다보면 바짝 따르는 느낌이 들면 냅다 시속 35km 이상의 속도로 밟아 한 2km 쯤 가면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것으로 주의를 준다.

상대를 뒤따라가다 마지막에 치고 나가 승리하는 것이 운동경기에서는 흔한데, 내가 전략적 수를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에게 기회를 내줌으로써 피로하게 만들어 이득을 얻는 방법이다. 정식으로 대응하기 전에 상대가 먼저 '무조건적인 수'를 두도록 한다. 어떤 행위를 취하기 전에 상대의 '위협'을 기다리거나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다. 

정부와 경쟁해야 하는 의료계의 입장에서는 먼저 수를 두는 '주도권'을 포기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상대방이 무조건적인 공약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손자 병법에서 적에게 '퇴로를 열어주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죽기 살기로 달려들면 나도 상처를 입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를 위협하는 것이 결코 나에게 유리하지 않지만, 문제는 내가 협력하지 않으면 상대가 내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상황이다. 나의 선택폭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 의료계가 항상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의 위협을 허용할지는 아주 민감한 문제다. 

상대가 나에게 약속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나와 상대 둘다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상대가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신빙성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양측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수'가 아니라 약속, 즉 '조건부 수'라는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한다. 상대가 협력할 것을 아무 조건 없이 공약한다면, 이를 이용하고 배반할 것이다. 상대방 역시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조건 없는 공약은 하지 않는 것이다. 죄수들의 딜레마에서 나오는 수가 바로 이것이다.